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주말에만 집에 오는 생활이 벌써 2년쯤 되었다.
주중 저녁은 이제 아내와 나, 둘뿐이다.
처음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고, 어색하기도 했다.
20년 넘게 우리는 ‘엄마’와 ‘아빠’로 살아왔다.
식탁엔 늘 아이들 이야기가 올랐고, 관심사는 학원, 성적, 친구, 진로 그런 것들이었다.
아내와 나는 마주 앉긴 했지만 서로를 보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달리는 동료였지, 부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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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떠난 저녁 식탁
어느 날부터인가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현관문을 열어도 뛰어나오는 아이가 없었다.
TV 소리만 작게 흘러나오는 거실에서
아내가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왔어?”
“응. 애들 왔어?”
“아니, 이번 주엔 안 온대.”
그 짧은 대화로 저녁이 시작되곤 했다.
처음 몇 주는 좀 허전했다.
식탁에 접시 두 개 놓는 것도 어색했고,
밥 먹는 속도도 달라서 금방 끝났다.
서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가 설거지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는것도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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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둘이 마주 앉았다
그래도 내 컨디션을 알아주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는 것 같다.
둘다 ’ I ‘성향인지라 필요한 대화외에는 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라도 대화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식사할때나 거실에서 간식을 먹을 때마다 회사 일, 동료 이야기, 뉴스, 동네 마트 할인 정보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내가 예전 얘기를 꺼냈다.
“애들 어렸을 때, 집안에 애들 장난감이 바글바글했는데 그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없는 지금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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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부부로 돌아가는 시간
이제 우리는 드라마도 함께 본다.
서로 안 좋아하던 장르였지만, 중간에서 타협도 하고
드라마 끝나고는 각자의 해석을 주고받으며 웃기도 한다.
밤늦게는 간단히 차를 끓여 마시며, “예전엔 이런 여유가 없었지”라는 말도 자주 나온다.
예전엔 둘만 있는 시간이 어색했는데
지금은 둘밖에 없다는 게 오히려 편안하다.
아이들이 없으니, 우리 대화는 온전히 우리 이야기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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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평범한 저녁이 고맙다
아이들이 없는 집은 한때 쓸쓸했지만
이젠 오히려 우리만의 공간이 되었다.
TV 소리, 주전자 끓는 소리, 간간이 흘러나오는 아내의 웃음소리…
이 모든 게 예전엔 없던 풍경이다.
20년 전 결혼식 날, 신혼 첫날밤,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자”라고 했던 그 다짐이
지금 와서야 조금씩 실현되는 느낌이다.
늦은 저녁, 마주 앉은 우리 둘의 식탁은
그 어떤 연회장보다 따뜻하고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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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과의 저녁은,
하루 중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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